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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청춘엔 아직도 비가 내린다
by.소고

 

 

 

 좋아해.

 그 말 한마디 못하고 박성화는 거절을 당했다. 미안해 소리도 안 들었지만 그건 명백한 거절이었다. 소희가 누굴 좋아하고 있는지는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그걸 입으로 듣자니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결국 미안하단 말은 제가 다 했다. 네가 뭐가 미안해. 하며 웃는 소희를 성화는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이렇게 보내면 또 소희는 걔한테 가겠지. 결국, 끝까지 박성화는 한마디도 제대로 못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다는 말이 하나밖에 없는 우산을 건네주며

 

 "비 맞으면 감기 걸려. 이거 쓰고 가."

 

 

 저 등신 호구 새끼. 홍중은 이 영화를 수십번째 봤어도 여전히 이 부분만큼은 제대로 눈을 뜨고 보지 못했다. 스크린 속 박성화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제가 거기에 너무 몰입해선 지는 몰라도 이 영화만 몇 번을 보는데 이 장면 만큼은 그냥 무난히 넘길 수 없었다. 저러고 또 김소희 붙잡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울지도 않고.

 저거 촬영 갔다 왔던 날 성화는 칭찬을 엄청나게 들었더랬다. 촬영 끝나자마자 아침에 전화 와서 줄줄 읊는데 이제 촬영 끝났냐고 물으니깐 촬영은 새벽에 이미 다 끝났고 지금은 대기 중이란다. 그럼 그때 전화하지 나 편집 중이었는데. 새벽 4시면 너 잘 거 같았단 말이야. 아. 여기까지 생각해버리면 안 되는데. 벌써 영화는 그 장면을 훌쩍 뛰어넘어 소희와 남주가 만나는 씬까지 와버렸다. 둘은 결국 이뤄진다. 박성화만 빗속에 남겨지지. 장면이 바뀌고 빗속을 뛰어가는 성화가 클로즈업된다. 저거 찍고 감기 안 걸렸나.

 

 탁

 

 스크린에서 박성화가 사라졌다. 뭐야 이거. 그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열댓 명이지만. 그 공간은 완전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직원이 들어와서 말하길 정전이란다. 웬 정전. 열댓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두 비상구로 대피하고 홍중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이 마지막 상영이랬는데. 홍중이 좌석과 좌석 사이의 계단을 내려올 때쯤 다시 불이 켜졌다. 갑자기 밝아져 적응이 안 됐다. 그리고

 

 "저..."

 "......"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 박성화?"

 

 스크린 속 비 맞으면서 달리던 박성화가

 눈앞에

 거짓말처럼

 

우리의 청춘엔 아직도 비가 내린다

 

 

 

 그날 홍중이 본 영화는 개봉한 지 4년이 조금 넘은 영화였다. 그날 관객 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영화는 흔히들 말하는 '망한 영화'였다. 제목도 길어. 우리의 청춘엔 아직도 비가 어쩌구. 감독하고 배우들은 나름 유명했는데 그냥 망했다. 홍보도 꾸준히 했던 거로 아는데. 심지어 상도 받았으면서 성적이 이렇게 안 나올 수가 있나. 제목 말하면 아, 그 영화? 들어는 봤지. 와 같은 반응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영화. 그런 망한 영화를 홍중은 영화관 가서 수십번을 봤다. 마지막 상영 날까지 영화관 가서 보고 나오면서 다시는 영화관에서 못 볼 줄 알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딱 하루 재개봉을 한다는 공지가 떴다. 홍중은 잠시 영화관이 미친 줄 알았다. 인기도 없던 영화를 왜 다시 재개봉을 하는 거지. 예상대로 관객들도 몇 없었다. 돈도 안 되는 거 왜 굳이 재개봉을 했을까. 생각하면서도 몸은 이미 영화관 와서 티켓 끊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박성화는 홍중의 집에서 씻고, 옷 받아 입고, 밥 먹고, 이젠 머리까지 말리고 있었다. 미친 새끼. 미친 건 영화관 쪽이 아니라 제 쪽이었나보다. 옷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제일 큰 걸 줬는데 잘 맞았다. 그 옷들 그냥 가지고 있을 걸.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박성화는 자신을 박성화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어서 하는 말이

 

 "근데 혹시... 다른 사람은 못 봤어요?"

 "... 누구?"

 "그... 머리는 한 요정도 오고, 하얀색 우산 들고 갔었는데..."

 

 이름은 김소희라고... 아. 진짜 미친 건 이쪽이었나. 이로써 제 눈앞에 있는 박성화는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박성화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진짜 박성화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니가 왜 여기있냐고 눈 동그랗게 뜨고 물었겠지. 아니, 애초에 걔가 나올 수가 없지. 걘 이미 죽었는데.

 

 

 

 홍중은 방금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박성화를 보고 울 뻔했다. 처음 마주했을 때는 진짜 껴안고 펑펑 울 뻔했던 걸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도 종종 울컥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성화가 좋아하던 음식 똑같이 좋아할 때라던가, 영화 속 설정들 빼고는 전부 걔랑 똑같았을 때 등등.

 그래 이렇게 된 거 박성화가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한번 살아보자. 그리고 홍중은 성화의 어깨를 탁 붙들고 말했다. 근데 있잖아요, 영화 찍어볼 생각 없어요? 영화요?

 

 "내가 사실은 영화 찍는 사람인데 성화 씨를 배우로 쓰고 싶어서요."

 "... 저를요? 저 연기 배워본 적 한 번도 없는데..."

 "근데 잘할 수 있을 거예요."

 "네?"

 

 네 본체는 사실 배우니깐 너도 잘할 수 있을 거다. 라는 말에서 앞에 부분만 걷어냈다. 이걸 다 설명하면 쟤도 나도 힘들어질 테니까. 그럼 하는 거죠? 성화는 절대 거절할 수 없다. 왜냐면 극 중 소희가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했으니깐. 영화 좋아하는 소희 좋아하는 박성화는 슬프게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네 본체가 박성화인 이상 넌 하게 되어있으니깐. 홍중은 단톡방에 카톡을 다급하게 보냈다. 우리 배우 구했어요!!!

 영화과 선배 중 하나가 연출하고 감독 맡은 영화가 대박까진 아니고 중박은 쳤다. 그래도 올해 나온 신인 중에서는 성적이 꽤 잘 나온 편이라더라. 그때만 해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일이었는데. 솔직히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선배였고, 이름만 들어봐서 저와는 딱히 관련지을 게 없는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배가 꽤 이름 날리는 회사에게 투자금을 받았다는 소리가 돌았다. 그냥 소문인 줄 알았는데

 

 "그럼 시간 되는 거네?"

 "아... 네, 뭐 그렇죠."

 "잘 됐다. 그럼 너도 같이할래?"

 "네?"

 

 눈 떠보니 팀 단톡에 초대되어있었다. 위 학년은 졸작 찍느라 바쁘니까 제외, 더 밑 학년들은 아직 배운 게 없어서 제외. 그렇게 해서 그 선배를 중심으로 한 팀이 만들어졌다. 시나리오도 다 나왔고 배우만 있으면 된대서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들한테 가서 발로 섭외 뛰었는데 도저히 그 배역에 맞는 배우가 안 구해지더란다. 생각해보니깐 이미지가 잘 맞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럼 너는 배우 해. 내가 너 주인공인 영화 찍을게.'

 

 약속도 지킬 겸 해서. 물론 제 앞에 있는 박성화는 모르겠지만.

 

 

 

 

 나 배우 할 거야.

 그 말에 홍중은 손에 들고 있던 메로나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너 더위 먹었냐? 아니 진짜 진심인데. 아... 화이팅! 이런 말 해줘야 하나. 고2 여름방학 직전에 박성화는 배우가 될 거라고 선언했다. 이제까지 희망 진로 칸에 회사원 이런 거만 써서 내던 애가 꿈을 찾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어느 쪽이든 간에 홍중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음 하는 거지. 

 그리고 거짓말처럼 박성화는 한 작품에 캐스팅되었다. 작은 드라마에 2분 정도 출연하는 고딩 역할이랬다. 그게 여름방학이 거의 끝날 때쯤이었다. 김홍중이 보충을 들을 때 박성화는 오디션 보고 있었다. 됐다고 전화했을 때도 홍중은 학교였는데, 거짓말 안 하고 느낌표 백 개 붙은 목소리로 자기 붙었다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가 액정 밖까지 새어나가 교실에 있는 모두가 홍중의 쪽을 쳐다봤을 정도였다. 야 좀 작게 말해!! 화내면서도 홍중은 웃고 있었다.

 

 "성화 씨는 연기해보신 적 있어요?"

 "아뇨, 없는데..."

 

 야 이거 괜찮은 거야? 라는 말이 촬영장 곳곳에서 들렸다. 사실 걔 본체는 배운데 쟤는 영화 속 캐릭터라서 모르는 거예요. 진짜 배우 맞아요. 라고 말하면 홍중은 당장 촬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이거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일단 촬영 들어갈게요.

 레디, 액션! 소리 들리자마자 박성화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듯했다. 아... 진짜 박성화 같다. 오케이 사인 떨어지자마자 촬영장이 단번에 시끄러워졌다. 그 선배는 박수까지 쳤다. 홍중이가 엄청난 애를 데려왔네~ 카메라 건너편 쪽 있는 성화랑 눈 마주치고 따봉 한번 날려줬다. 자기 잘했냐는 눈빛 막 보내는 게 박성화랑 똑같았다. 이쪽도 박성화는 맞긴 맞지만.

 

 "이거 봐, 신기하지."

 

 배역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할 자리엔 박성화 세 글자가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원래 없던 역할인데 작가님이 필요하셔서 촬영 중간에 급하게 만드셨나 봐. 급하게 전화가 와서 출연 요청을 받았단다. 저번에 단편영화 잘 봤다고. 혹시 차기작 정해진 거 없으면 우리랑 하면 안 되냐고.

 우리의 청춘엔 아직도 비가 내린다. 그게 그 영화였다. 홍중이 수십번은 더 본 영화. 비를 주제로 한 영환데 그냥 평범한 로맨스 영화였다. 성화는 여주인공 소희를 좋아하는 서브 남주 역할이었다. 제일 오래된 친구라서 좋아한다고 말도 한마디 못하고 간접적으로 차이는 그런 역할. 웃으면서 마지막까지 우산 소희한테 주고 자기는 비 맞으면서 가는 역할. 당시 개봉했을 때도 성화 역할 찌통이라고 말이 많았다. 설정 뻔하다고 욕도 많이 먹었고. 촬영하면서 칭찬 많이 들었다고 좋아했었다. 재능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막 액션! 소리만 나오면 눈빛이 바뀐다고. 그걸 신나서 3번은 똑같이 말했던 것 같다.

 

 "홍중아, 뭐해?"

 "아... 아니에요."

 

 홍중은 지금도 어쩌면 모든 게 환각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현실이라기엔 너무 현실성 떨어지는 소재들이니깐. 그런데 눈 비비고 다시 떠도 그대로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신이 내려주신 기회가 아닐까. 홍중은 이렇게 생각했다. 신은 안 믿지만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 영화 배울 거라니깐?'

 '... 니가? 언제부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저번에 말 안 했나? 아무튼.'

 '그럼 너 영화 찍는 거야?'

 '너 배우 한다며.'

 '엉.'

 '그럼 너는 배우 해. 내가 너 주인공인 영화 찍을게.'

 '진짜?? 그렇게 해줄 거야?'

 '어, 싫어? 싫음 말고.'

 '아니아니아니 홍중아 내 말 다 안 끝났어.'

 

 홍중씨 그거 들었어요?

 저 잘한대요. 연기 처음 해보는 거 같은데 소질 있다구 칭찬 많이 들었어요. 홍중의 사고가 순간 정지했다. 아, 진짜요?? 되게 잘됐다. 연기 쪽은 관심 없어요? 입꼬리는 올려 웃고 있는데 눈이 웃어지질 않았다. 혹시 여기 평행세계 그런 건 아니겠지. 이런 거까지 똑같으면 나는 어떡하라고.

 

 

 

 

 축하드립니다!

 무대에 올라선 아나운서가 박성화의 이름을 영화 제목과 함께 한 글자씩 또박또박 불렀다. 폭죽이 한꺼번에 쾅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터졌다. 그렇게 크고 유명한 시상식도 아니었지만, 그날 박성화는 울었다. 눈물 참느라 수상소감도 뚝뚝 끊겨서 하는데 홍중은 보다가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이렇게, 큰, 상 주셔서, 흡, 사실은 제가아 처음으로, 상을 받아보는데... 아 존나 웃겨. 이건 무조건 찍어야 해. 과제 편집도 다 제끼고 보러온 보람이 있었다.

 

 "황연서 감독님, 김서영 작가님 우선 너무 감사드리고... 늘 고생하시고 도와주시는 스탭분들 너무너무 감사하고요, 같이 호흡 맞췄던 배우분들께도 너무 감사하고, 이번 작품 하면서 연기 연습 도와주신 류미지 선배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고요, 영화 봐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더 고마운 사람들이 많지만... 마지막으로 옆에서 오랫동안 항상 응원해주고 지지해준 친구한테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 하고 싶네요. 더 열심히 하는 배우 박성화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친 새끼... 저거 나 아니야? 사랑.. 뭐? 저거 나한테 한 말 맞아? 아닌 거 아니야? 정작 당사자는 눈물 덜 마른 눈으로 좋다고 헤헤 웃고 있었다. 저 미친 새끼. 홍중은 조용히 카톡을 켜서 제일 위에 있는 대화창을 열었다.

 

 -야

 -니 미쳤냐

 -야

 -저거 나 말한 거 아니야?

 -사랑한다 이 지랄 하고 있네

 -나 영상 찍다가 놀래서

 -폰 떨어뜨릴 뻔했잖아

 -니 미쳤냐?

 

 

 그다음 의미 없이 자판 막 두들겨서 친 거 연속으로 보내고 휴대폰을 껐다. 늦게까지 톡 안 볼 건 예상하고 있었다. 쟤도 쟤 나름의 사회생활이 있는 거니깐. 오늘 상 탔다고 팀끼리 고기라도 먹으러 가겠지. 홍중은 바로 나와서 버스를 탔다. 이제 볼 거 다 봤다. 애초에 박성화 보려고 온 거니깐. 찍은 영상을 돌려보는데 짜증만 났다. 사랑? 누가 누굴 사랑해? 박성화 쟤는 날 진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짜증이 났다. 억울해.

 

 -그거 진짠데

 

 웃기고 있네. 아직 시상식 끝나기까진 한참 남았을 텐데 어떻게 또 답장까지 했네. 2분 전에 보냈다고 찍혀있는 카톡은 팀플 단톡에서 열린 회의가 끝나고도 남았을 새벽 2시까지 읽지 않았다. 니가 뭘 아는데. 진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예민하게 굴 거까진 없다는 거 아는데도 괜히 짜증. 그렇지만 이건 홍중이 컨트롤 할 수 있는 구역 저 너머에 있는 일이라 차마 손댈 수가 없었다. 자고 일어나서 축하한다고 전화나 해야겠다.

 

 "안 와도 된다니깐 맨날 오는 거 봐"

 

 너 할 일없지. 에이, 선배 저도 바쁜 사람인데. 그냥 현장 보고 많이 배우려고 오는 거죠. 반은 진심이다. 반은 카메라 앞에 서는 박성화 보려고. 귀한 광경인데 제대로 봐놓아야지.

 

 "사실 소희도 꿈이 배우였거든요."

 

 아, 소희가 누구냐면...

 

 ... 그만.

 

 황급하게 입을 막았다. 더는 못 말하게.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깐... 말해줄 필요 없다는 뜻이에요. 아, 알고 계셨구나. 성화는 홍중이 어떻게 소희를 알고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성화는 가끔 김소희 얘기를 꺼냈다.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던 애니깐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박성화 얼굴로 김소희 얘기를 듣는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어떨 때는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고, 어떨 때는 귀가 멍해졌다.

 

 '... 거짓말'

 '진짜라니까?'

 '아, 알겠어. 그래 나도 너 사랑해'

 '... 진짜?'

 

 머리가 아팠다. 그거 홧김에 한 말이었는데. 저 오늘은 일찍 들어갈게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 주세요. 바로 올 테니까.

 

 

 

 

 그 영화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박성화 본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배우 중 한 명이 남우조연상까지 받았는데 이럴 수가 있냐고. 홍중이 더 화냈다. 성화는 오히려 평안했다. 영화는 망했어도 배우 박성화는 상승세를 탔다. 이번엔 드라마 러브콜을 받았단다. 미스터리 추리물이라고 했다. 비중은 그닥이지만 그래도 성화는 좋아했다. 그쯤엔 홍중이 2학년 과대 맡은 학기 초여서 두 배로 바빠졌고, 성화도 드라마 촬영 들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대기할 때나 새벽에 촬영 다 끝나고 나서만 연락이 되었다. 가끔 만나면 연예인들 하는 모자나 마스크 이런 거도 안 쓰고 오길래 물어봤더니 어차피 다 못 알아봐서 괜찮단다. 그래도 열에 한 번은 알아보는 사람이 있더라. 무슨 페이스북 페이지에 떴었다고. 감사합니다 하고 싸인해주는 박성화 보면서 김홍중은 생각했다. 얘 진짜 연예인이구나.

 가벼운 교통사고겠거니 했다. 기사가 뜨기도 전에 박성화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나 병원인데 스케줄 가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그래서 지금 응급실인데 크게 다친 건 아니니깐 기사 뜨는 거 보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멀쩡하게 오타 하나 안 내고 카톡까지 하는 걸 보니 진짜 괜찮은 건가 싶었다. 알겠다고 답장한 카톡은 2시간이 넘도록 보질 않았다.

 2시간은 무슨. 반나절이 넘도록 1은 지워지지 않았다. 홍중이 학교에서 오후 수업까지 다 듣고 시내버스를 탈 때까지도. 전화는 당연히 받지도 않았고. 어디에 입원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런 것도 안 알려주면 어떡하자는 거야. 매니저 전화번호 받아뒀던 기억이 있어 그리로 전화했을 땐, 액정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가 꽤 시끄러웠다. 지금 박성화 어디예요? 병원 알려주면 제가 그리로 갈게요. 많이 다친 거예요?

 

 "성화가 많이 아파요."

 "... 많이요?"

 "네, 좀 많이... 몇 시간 전만 해도 반응은 했는데 지금은 아예 의식을 잃은 거 같아서..."

 

 성화가 홍중 씨한테는 죽어도 병원 알려주지 말랬는데... 그러면서 매니저는 병원 주소를 문자로 보내줬다. 그래도 지금 그 말 들을 상황이 아닌 거 같아서요. 응급실인데 환자가 많이 밀렸다고 치료가 조금 늦어졌댔다. 응급처치는 다 해놨는데 그래도 피가 많이 나서 당장 수술 들어가야 하는데 수술방이 빈 곳이 없었다고.

 다음 정류장에서 바로 내리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 병원까지 달려가는 중엔 지금 당장 눈 못 떠도 좋으니까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빌었다. 그때도 신은 안 믿었는데 살려만 주면 당장 기독교로 개종하겠다고 하늘에 대고 말했을 만큼. 눈물이 절로 나더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사랑한다고 얼굴 보고 말해줄걸. 좀 더 진심을 담아서 말해줄걸. 걔한테 직접 눈 마주 보고 사랑한다는 말 들을걸. 그게 설령 진심이 아니더라도.

 

 -ㅇㅋ 알겠어 1

 -너 지금 있는 병원 어딘데  1

 

 네가 배우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다.

 약속은 지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아닌 박성화라도 내가 참여한 영화에 주연으로 나온다는 건 그래도 약속 반은 제대로 지킨 거 아닌가? 홍중이 복학하고 3학년의 인생을 살아갈 때쯤 영화 촬영은 끝이 났다. 성화는 매일 신기해했다. 어떻게 내가 영화를 찍을 수가 있냐면서. 소희 만나면 꼭 말해줄 거라고. 그래... 말해줘라. 네가 다시 영화 속에 들어간다면 말이지.

 

 "그쪽은 내가 아는 사람이랑 엄청 닮았어요."

 "진짜요??"

 "걔도 이름이 박성화거든요."

 

 걔도 배우였어요. 18살에 갑자기 배우 하겠다고 하더니 진짜 작품 따오더라고요.

 

 "영화 보여줄까요?"

 

 아...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이미 뱉은 말 주워 담을 수 없기에 홍중은 침대 밑에 뒀던 빔프로젝터를 꺼냈다. 이거 되게 오랜만에 쓰는 거라 잘 될지는 모르겠는데...

 

 "그 친구가 나오는 거예요?"

 "... 네."

 "... 나랑 되게 닮았네요."

 

 처음부터 클로즈업 돼서 나오는 박성화. 홍중은 이때부터 좆됐음을 느꼈다. 바로 다음 씬이 소희 등장 씬이니깐. 지금이라도 멈출까.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소희의 대사가 나오고 난 후였다. 그... 이게 말이죠, 이상한 게 아니라

 

 어라

 

 빔프로젝터는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데. 소희는 이미 제 몫의 대사를 하고 있었다. 제 옆에 박성화만 없다. 영화 속 성화는 소희 옆에서 대사하고 있는데 제 옆에 있던, 영화관 스크린에서 튀어나온 박성화는 없다. 아, 원래 자리로 돌아간 건가. 어떻게 보면 저기가 원래 자리니깐. 그날 홍중은 그 영화를 또 봤다. 이미 내용부터 대사까지 줄줄 외워서 재미도 없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봤다.

 

 네.. 사실 그 친구가 고향이 미국이어서.. 네, 급하게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해서... 네. 네. 네, 알죠. 나중에 꼭 데려갈게요. 한국 오면 형 먼저 만나라고 할게요. 네. 연락처 지금 보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 번호 보내면 되는 거죠?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뒷수습은 모두 홍중의 몫이었다. 이제야 모든 게 다 제자리로 돌아간 기분이다. 역시 그건 환각이었을까. 헛웃음이 나왔다. 또 박성화는 제 곁에서 사라졌다.

 

 두 번은 안 아팠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이번 성홍 합작에서 글로 참여한 소고입니다!!

우선… 제가 이렇게 살아있을 때 합작이 열려 정말 다행입니다… 합작 열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요, 합작 참여하시는 분들과 봐주시는 모든 성홍러 여러분 끝까지 성홍하셔야 합니다. 먼저 지치는 쪽이 개가 되는 걸로.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라는 영화에서는 영화에서 인물이 튀어나온다는 것과 그 인물과 주인공이 영화를 찍는다. 정도만 가져왔어요. 사실 흑백 영화에서 튀어나와 컬러풀한 세상에서 유일한 흑백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는데 글이라서 표현을 못하겠더라고요… 원래는 성화도 아주 옛날 영화에서 튀어나오게 하려 했는데 스토리를 다 엎으면서 4년 전 영화가 되었네요. 또 한가지는 손만 닿으면 영화에서 나온 그 사람이 사라지기 때문에 스킨십 금지… 라는 설정도 되게 인상 깊었어요. 근데 이런 게이 호모 소설에 스킨십이 빠질 수 없기에.. 결국엔 스킨십이라고 할 장면도 없었지만… 그걸 떠나서도 영화 소재가 참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이 결말을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태에 있을 수 있는 최선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성화가 거기 남아있었어도 저는 홍중이가 더 힘들었을 것 같기에… 뭔가 알 수 없는 죄책감도 가질 것 같고 말이에요… 성화가 원래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제 기준 최선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진짜 박성화가 살아있었다면 정말 진짜 해피엔딩이 되었겠지만요ㅋㅋㅋㅋ 저는 해피엔딩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만들었을 거예요.

제 글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더 열심히 호모하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합작 신청 조기마감 씨피 성홍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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