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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본 풍경의 아름다움을 나는 아직 잊지못한다
by.녹턴

너와 나는 집이라곤 열 손가락을 겨우 넘길 정도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같이 산을 누비며 자랐다.

그렇게 같이 놀다가 나이가 되면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고, 마지막으로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시간이 지나면 졸업한 뒤 마을을 나가 취업하는 게 이 마을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섭리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다.

 

 

"아이고 성화야,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왜요 할머니?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글쎄 요 옆집에 사는 김씨네 아들이 없어졌디야... 성화 너랑 자주 놀던 그 김홍중이 말이여!!"

 

"홍중이가 없어졌다고요?"

 

"그래!! 안 그래도 너랑 자주 놀았다길래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더니 보이지도 않아서 너 찾느라 진땀 뺐다..."

 

"..그러면 할머니는 집에 계세요, 제가 한번 나가서 찾아볼게요."

 

"그래 성화야... 찾으면 꼭 김씨한테 전화든 뭐든 연락 주고, 알겠지?"

 

"네 알겠어요, 할머니."

 

 

그렇게 말도 없이 사라질 네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집 앞 슈퍼에 잠깐 가도 가족들한테 말하고 가는 너였는데, 그런 네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디 간 거야 김홍중."

 

 

일단 강가나 산은 홍중이네 가족들과 어른들이 찾아 볼테니 나는 어른들은 잘 모르는, 우리만 알고 있는 아지트에 가서 너를 찾기 시작했다.

이맘때가 되면 이상하리만치 푸른 장미가 가득 피어있는 연못 근처의 한 작은 집이 목적지였다.

워낙 산속 깊이 있는 곳이기도 했고, 초여름이 아니면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아무도 모르던 곳이었다.

한마디로 나와 홍중이의 아지트로 쓰이던 곳이자, 길고양이들의 집이 되어주던 그런 장소였다.

집안은 우리가 올 때마다 조금씩 청소해둬서 그런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곳에 네가 숨어있을까 싶어서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봤지만 네 흔적은커녕 사람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아 그저 집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지나자 하늘이 붉게 물들었고, 늦게 돌아가면 할머니가 걱정하실 테니 나머지는 내일 찾아보기로 결심한 뒤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제 곧 있으면 여름이라고 해도 아직 밤에는 쌀쌀할 텐데..."

 

 

하지만 잠자리에 들고나서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네 생각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너이기에 계속 생각이 나는 걸까, 아니면 전부터 피어오른 가슴속의 이름 모를 이 감정 때문인 걸까.

...일단은 잠을 푹 자야 내일도 너를 찾을 수 있을 테니 일찍 잠을 청하기로 결심하고, 눈을 감았다.

 

 

"으음..."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인 거 같은데 왜인지 밖이 시끌시끌했다.

그리고 간간이 귀에 스치는 불안한 말들.

방안까지 꾸역꾸역 비집고 들어오는 서늘한 분위기에 결국은 덮었던 이불을 제치고서 밖으로 나왔다.

 

끼익-

 

방 앞 마룻바닥이 나무인 탓에 마루는 내 무게를 받자마자 곧장 소리를 냈고 소리를 들은 건지 밖에 있던 누군가가 우리 집 대문을 느리게 열었다.

그때의 그 서늘한 분위기를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어떻게 잊겠는가, 그때가 처음으로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뼈저리게 느낀 날인데.

어른들은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집 앞에는 김씨네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할머니만 서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집으로 돌아가셨고 할머니만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셨다.

 

..그게 숨긴다고 될 일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홍중 일인데.

 

 

"...그럼 장례는 언제 치르는거에요?"

 

"아마 이번 주 내로 치르지 않을까 싶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다냐....."

 

"그럼 왜 죽었는지, 왜 걔가 그 시간에 거기까지 갔는지는 알 수 있는 거죠 할머니?"

 

"일단 경찰분들이 열심히 노력은 해본다고 하니께 기다리자 아가."

 

"...네, 할머니."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홍중이의 시체는 마을 건너편 산에까지 가셔서 찾아보시던 옆집 정씨네 아저씨가 맨 처음으로 발견하셨다고 한다.

발견했을 때는 숨이 옅게라도 남아 있었지만 워낙 마을이 산골짜기에 있다 보니 119가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져 결국은 죽은 채로 구급차에 이송돼서 지금은 근처 병원 영안실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놀던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싶었는데,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리고 아직 대략적인 사인은 나오지 않았지만 머리를 돌에 세게 부딪힌 게 제일 큰 사망원인이 될 거라고 구급 대원이 말씀하시는 걸 할머니가 들으셨다는 것까지 전해 듣자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네 고통을 지금이라도 열심히 헤아려보려고 노력하지만 단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원통할 따름이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너를 따라 열심히 하던 공부도 놓아버리고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며 살았다.

해가 쨍쨍한 날이면 너와 자주 가던 시냇가에 가서 이유 없이 돌을 던지기도 하고.

비가 땅을 뚫을 듯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할머니한테 미리 말해두고 아지트에 가서 길고양이들과 같이 하룻밤을 지내고 오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자체가 괴로워서 여러 번 나쁜 생각도 해봤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해서 홍중이를 만나봤자 쌍욕밖에 더 듣겠냐, 라는 결론이 내려져서 결국은 포기하고서 그냥 네 흔적을 더듬어가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너와 사진을 좀 더 많이 찍어둘 걸 그랬다.

사진이라도 많이 남아있으면 그 사진들을 더듬어가면서 기억이라도 끄집어낼 텐데..

내 손에는 그저 너와 함께 있었다는 그 흐릿한 기억만이 가득 담겨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너를 잃고 하염없이 방황하던 17살의 나는 어느덧 성인이 되어서 어엿한 직장도 가지게 되었고, 월세지만 집도 얻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이제 21살이 되었지만 내 마음속의 너는 여전히 17살의 그때로 남아있다는 걸 생각할 때마다 괜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눈물이 먼저 났다.

 

 

"김홍중... 평생 같이 살자며, 서로 배신하지 말자며. 그래놓고 먼저 가는 게 어디 있어."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날에는 꼭 꿈에 홍중이 네가 나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푸른 하늘과 찬란한 햇빛 아래의 네가.

난 햇빛 아래의 네 모습을 제일 좋아했다.

 

넌 빛날 때가 가장 아름다우니까.

 

하지만 꿈에서 깨면 전혀 다른 현실의 상황에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방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네 생각에 눈물을 흘리다가 잠에서 깨서는 슬리퍼만 신은 채 밀린 우편물들을 꺼내러 비척비척 걸어갔었다.

익숙한 고지서들과 봉투들을 꺼내던 와중, 그 사이로 왠지 낯이 익은 편지봉투 하나가 슬쩍 내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중학생 때 너에게 선물로 주었던 편지지 세트에 들어있던 그 봉투였다.

 

 

"뭐야 이거?"

 

 

혹시나 홍중이네 부모님이 안부도 물을 겸 보내셨나 해서 찾아본 보낸 사람 이름에는 김홍중, 네 이름 석 자가 떡하니 박혀있었고 그 글씨체 또한 내가 17년 동안 지겹게 봐온 바로 그 글씨체였다.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홍중이가 옛날에 미리 써 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 내 주변에 사람이 있었더라면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로 눈물을 엄청나게 흘렸으니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열어보자, 편지에는 직접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건지 곳곳에 눌러쓴 자국들이 가득 남아있었다.

그리고 마치 지금 내 상황을 뻔히 다 알기라도 하는 거 같이 곳곳에 위로의 말도 적혀있었다.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하다는 말이 제일 많이 적혀있었다.

 

 

"..바보 같은 새끼."

 

 

이렇게 미안해할 거면 가지를 말던가, 왜 먼저 가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는 건데.

 

그렇게 쭈욱 편지를 읽어가다 보니 마지막 줄에 눈에 띄는 문장이 있었다.

곧 있으면 우리 아지트 옆에 있는 호수 근처에 장미가 예쁘게 피니 거기서 만나자는 문장이었다.

..옛날의 저 같았으면 애초에 죽은 사람으로부터 온 편지는 읽어보지도 바로 버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홍중이 네 이름으로 와서 읽은 것이었고, 홍중이 네가 말하듯이 쓰인 편지라서 더 마음이 갔던 거 같다.

 

그 길로 나는 곧장 짐을 싸서 마을이 있는 그곳으로 향했다.

20살 때 직장을 구한다고 하며 도망치듯 뛰쳐나온 이후로 단 한 번도 가지 않아서인가, 1년 만에 돌아가는 고향이었다.

하지만 정말 얄궂게도 고향의 모습은 1년 전의 그 모습과 똑같았다.

그래서, 그래서 더 가슴께가 아릿했다.

하지만 너와 만나기로 한 이상,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순 없다고 생각해서 곧장 아지트가 있는 산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서인가 산의 모습은 조금 변해있었지만 너와 같이 한 추억만큼은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을까, 저 멀리 나무집과 푸른 장미가 어른어른 눈앞에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장미들 사이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그 형체를 보자마자 무언가에 홀린 듯이 무작정 뛰어갔고 이내 도착하자 보이는 사람의 모습에 말을 잃었다.

 

 

"...김홍중?"

 

"왔네, 박성화."

 

 

보일 리가 없는, 아니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 네 모습이 보이자마자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려 4년 만에 보는 너였다.

원해서 떨어진 것도 아닌, 억지로 못 보게 된 너를 보는 것이기에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다리에 힘에 풀린 것이었다.

 

 

"왜, 왜 이제서야 나타난 건데.."

 

"...원래는 더 일찍 나타나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네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그래서 좀 늦게 나타났어"

 

"...그래서 나 혼자 두고 가서 좋냐, 바보야? 좋냐고."

 

"좋을 리가 있겠어? 당연히 하나도 안 좋지."

 

"그래서 거기는 좀 괜찮아?"

 

"거기?"

 

"그, 저승 말이야."

 

"박성화 옛날에는 그런 거 하나도 안 믿더니, 이제는 완전 신봉자 됐나 보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김홍중."

 

"...그래, 다 내 잘못이지. 네가 그렇게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게 한 것도, 마을을 떠나서도 계속 내 생각만 하게 한 것도 다 나 때문이니까."

 

"그래도 이렇게라도 보니까 좋긴 하네. 나 엄청 울었었거든, 너 가고 나서."

 

"응, 봤어. 너 우는 거."

 

"뭐? 언제?"

 

"작년 여름에 네가 술 잔뜩 마시고 집에서 빌빌댈 때. 그때 좀 볼 만했는데."

 

"아씨.."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어느새 시간이 지나서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했다.

마치 네가 없어졌던 그때 그날처럼.

 

 

"그럼 그 편지도 네가 쓴 거야?"

 

"응, 내가 힘 좀 썼지. 그런 감성적인 글은 처음 써봐서 좀 힘들긴 했지만 말이야."

 

 

조잘조잘 말하는 네 모습을 오랜만에 보는 건 맞지만, 네 모습과 말투는 내 기억 속의 네 마지막 모습과 똑같았다.

딱 17살의 너, 그때 그 모습으로 계속 멈춰있었으니 당연한 걸까.

눈은 오랜만에 보는 네 모습을 담기에 바빴고, 손은 네 옷자락에서 떨어질줄을 몰랐다.

마치 엄마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처럼 말이다.

 

 

"..그럼 여기에 계속 있는 거야?"

 

"아니, 딱 오늘 하루만 있을 수 있어. 그 이후에는 다시 돌아가야 돼."

 

 

역시나.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고개를 푹 숙였다.

왜 하루뿐일까.

4년 동안의 그리움을 풀기에 하루는 너무 부족한데.

그렇게 생각하며 오랜만에 온 집안을 천천히 둘러봤고, 못 보던 것이 생겨났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너를 닮은 투명하고 예쁜 꽃병에 못 보던 꽃이 꽂혀있었다.

 

 

"이건 무슨 꽃이야? 옛날에는 없었던 거 같은데."

 

"아 그거? 리시안셔스라고, 산 안쪽에 피어있더라고. 예뻐서 가져왔어."

 

 

그러고 보니 리시안셔스의 꽃말이 영원한 사랑? 이었던 거 같은데....

..너와 내가 꽃말 같은 그런 사이가 됐어야 했는데,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럼 오늘 하루 지나고 나면 너는 완전히 없어지는 거야?"

 

"뭐, 그런 셈이지. 왜? 더 보고 싶어?"

 

"그러긴 한데.. 어차피 더 못 보잖아."

 

"지금 가면 너랑 직접 얼굴 보고는 못 만나겠지만 꿈에는 종종 나타날 수 있게 노력해볼게."

 

"아니야 됐어."

 

"뭐야.. 싱겁게."

 

 

꿈에 네가 나타나면 자꾸 너를 잡을 거 같고, 네 생각에 잠을 못 지새울 거 같았다.

아니, 역으로 너를 자꾸 보고 싶어서 하루 종일 잠만 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한테는 네가 그런 사람이었다.

곁에 있어도 보고 싶고, 없으면 더 그리운 그런 사람.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하던데, 나는 너무 늦게 알아차린 거 같다.

너를 보내고 나서야 이 감정을 깨달았으니.

 

 

"..그냥 안 가면 안 돼?"

 

"어?"

 

"나 너 계속 보고 싶어, 그러니까 가지 마."

 

"...야 박성화."

 

"어?"

 

"앞으로는 여기에 오지 마, 어차피 와도 아무도 없을 거긴 한데..."

 

"싫어, 나 일도 그만두고 여기 와서 계속 살 거야."

 

"내 말 들어, 박성화."

 

"싫다고, 김홍중."

 

"야 박성화. 난 이미 여기 없는 사람이야, 죽었다고. 근데 그런 나 하나 붙잡겠다고 네가 네 인생도 포기하고 여기 와서 살면 내가 좋아할 거 같아?"

 

"그래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보단 낫잖아."

 

"아니, 난 오히려 네가 그러는 게 더 싫어. 나는 네 추억 속에 한 장면으로 남고 싶을 뿐이지, 네 인생을 무너뜨린 악몽으로 남고 싶은 게 아니야."

 

"..."

 

"제발 네 인생을 살아줘, 성화야. 그게 내 소원이야."

 

"소원 들어주면, 나 기다려줄 거야?"

 

"응. 네가 할아버지가 되고, 자연스레 늙어 죽어서 내가 있는 데에 올 때까지 기다릴게."

 

"..그래도, 그래도 나는 너 보내기 싫어."

 

 

네 말에 결국 꾸역꾸역 참고있던 눈물이 터졌고, 얼굴을 타고 흘러서 나무 바닥에 뚝뚝 자국을 남기며 떨어졌다.

 

내 인생은 홍중이 너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볼 게 없는 인생인데, 어떻게 살아가라고.

난 이제 네가 없으면 빈 껍데기야.

제발 가지 마.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줘.

날 버리지 마....

 

머릿속에는 차마 네 앞에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이 엄청나게 쏟아져내렸고, 그 말들로 머리가 꽉 찼다.

홍중이 네 앞에서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린애구나.

네 생각만 하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으니.

맘 같아선 계속 고집을 부리고 싶었지만 네가 하는 말들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하는 터라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며 눈물을 닦아냈다.

 

 

"착하네 박성화."

 

"..너 따라서 일찍 안 올 테니까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씩 꿈에 나타나줘."

 

"응, 알겠어. 약속할게."

 

 

그새 시간이 많이 지나서 약속한 하루가 다 됐는지 네 몸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희미해지는 네 몸을 부러 꽉 껴안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미안해, 오래 못 있어줘서."

 

"..아니야."

 

"...성화야,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해?"

 

"응, 내 인생을 살라고 했잖아 네가."

 

"그 말, 꼭 지켜줘. 나는 성화, 네 추억 속에 있는 한 장의 풍경 속에 존재할 때 가장 아름다우니까."

 

"...사랑해, 홍중아."

 

"나도 사랑해, 성화야."

 

"..잘 가."

 

"갔다 올게, 기다리지 마."

 

 

그 말을 끝으로 너는 마치 빛이 퍼지듯 사라졌고, 바닥에는 물망초 한 송이만 덩그러니 놓였다.

그리고 집에는 다시 나 혼자만 쓸쓸하게 남았다.

...짧은 한여름 밤의 꿈같은 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너는 나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고, 나는 너에게 내 사랑을 전했으니 그거면 됐다.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에 지금 내가 비참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억지로 너를 붙잡고 못 가게 했었다면 더 비참했을 것이다.

 

 

"...돌아가자."

 

 

너를 만났으니 됐다.

그걸로 된 것이다.

...네 추억 속에 내 모습을 짧게나마 담았으니 우리의 엔딩은 해피엔딩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너를 볼 때도 조금은 행복하겠지.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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